디즈니 실사 영화 ‘크루엘라(Cruella, 2021)’는 기존의 디즈니 캐릭터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악역 ‘크루엘라 드 빌’의 탄생 비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악역의 탄생 이야기를 넘어, 억압된 자아를 해방시키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여성의 성장 서사를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패션, 음악, 시대 분위기를 압도적으로 담아낸 이 작품은 특히 시각적·청각적 스타일이 뛰어나며, 기존 디즈니 영화들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크루엘라의 성장 이야기
‘에스텔라’로 태어난 주인공은 어릴 적부터 남다른 외모와 기질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녀는 흑백으로 나뉜 머리색을 가지고 있었으며, 강한 개성과 예술적 재능, 특히 패션에 대한 감각이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녀를 세상은 이해하지 못했고, 학교에서 문제아 취급을 받으며 외로움을 겪었습니다. 그녀의 유일한 버팀목은 어머니였지만, 어린 시절 파티장에서 어머니가 의문의 사고로 절벽 아래로 떨어져 사망하면서 에스텔라는 세상에 홀로 남게 됩니다. 그녀는 런던으로 향해 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두 명의 친구, 재스퍼와 호레이스를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함께 소매치기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고, 에스텔라는 자신을 숨긴 채 조용히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녀 안의 창조적인 욕망은 점점 커져만 갔고, 결국 유명 패션 디자이너 ‘바론니스’의 눈에 띄어 그녀의 브랜드에서 일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보조로 시작했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천부적인 감각으로 점차 두각을 드러내게 되죠. 그러나 어느 날, 바론니스가 자신의 어머니를 죽게 한 장본인임을 알게 된 에스텔라는 깊은 충격에 빠지고, 억눌러왔던 분노와 고통, 억울함이 폭발하면서 본래 자신의 모습이었던 ‘크루엘라’를 표면 위로 끌어올립니다. 더 이상 숨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당당히 드러내기로 결심한 그녀는 과거를 떨치고 ‘크루엘라’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거듭납니다. 그녀의 성장은 단순한 성공기가 아니라, 고통과 상실, 배신을 넘어선 자아 확립의 여정입니다.
복수와 분노의 감정선
크루엘라의 이야기는 성장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복수극입니다. 어릴 적부터 억눌리며 살아온 그녀는 바론니스와의 인연 속에서 자신이 억울하게 가족을 잃었음을 알게 됩니다. 바론니스는 권위적이고 냉정하며,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 안에서 크루엘라는 단순한 직원이 아니라 또 하나의 자신을 투영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죠. 자신이 지금까지 바론니스 밑에서 어떤 대접을 받아왔는지, 그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를 죽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에스텔라는 이전의 자기를 버립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순응하지 않으며, 새로운 이름 ‘크루엘라’를 들고 런던 패션계를 뒤흔들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복수는 칼이나 폭력이 아닌, 패션과 창의성, 대담한 퍼포먼스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크루엘라는 바론니스의 모든 행사와 브랜드, 언론의 관심을 가로채며 런던 전역에서 존재감을 키워갑니다. 단순한 보복이 아니라 ‘세상에 나를 증명하겠다’는 선언으로 확장된 이 복수는, 그녀가 더 이상 희생자가 아닌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객들은 그녀의 감정선에 공감하게 되고, 그녀가 왜 분노했는지, 왜 반항했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영화는 악역을 이해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그녀의 치밀하고도 감정적인 복수 서사가 자리합니다.
스타일로 말하는 크루엘라
‘크루엘라’는 디즈니 영화 중에서도 가장 시각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영화의 핵심 키워드는 ‘패션’입니다. 크루엘라의 모든 감정과 의도는 그녀의 옷과 스타일, 무대에서 표현됩니다. 일반적인 대사나 행동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대신, 그녀는 패션을 통해 세상과 소통합니다. 그녀의 드레스는 메시지이며, 무대는 전장입니다. 특히 쓰레기차에서 내려 길게 펼쳐지는 드레스 장면, 바론니스의 파티에서 불을 질러 흑백 드레스를 드러내는 장면 등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를 넘어 서사의 중심 장면으로 작용합니다. 이는 관객에게 ‘스타일은 감정이다’라는 메시지를 확실히 각인시킵니다. 또한 그녀의 스타일은 1970년대 펑크 문화, 고딕적 요소, 영국식 우아함 등이 조합되어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음악 또한 이 영화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롤링 스톤스, 퀸, 블론디, 닉 케이브 등 다양한 고전 록 음악은 크루엘라의 성격과 기질을 훌륭히 대변합니다. 그녀의 스타일과 음악은 하나의 정체성으로서 기능하며, 관객의 몰입도를 극대화합니다. 그 결과, '크루엘라'는 단순히 패션 영화가 아닌, 하나의 시각예술 작품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디즈니 영화 ‘크루엘라’는 단순한 악역의 유년기를 그린 영화가 아닙니다. 억눌렸던 자아가 어떻게 세상과 부딪히며 성장하고, 고통을 딛고 자기 정체성을 세워가는지를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패션과 음악, 그리고 주인공의 감정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한 편의 퍼포먼스 같은 느낌을 줍니다. 영화 속 크루엘라는 더 이상 애니메이션 속 일차원적인 악역이 아니라, 복잡하고 입체적인 현대 여성 캐릭터로 재탄생했습니다. 현재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이 영화가 단순한 오락영화를 넘어선 메시지와 공감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장, 상실, 복수, 해방… 삶의 모든 감정을 응축한 캐릭터 크루엘라.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입니다.